글을 써보기로 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혹은 피로해진 정신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3년 전인가, 아니다.
출산을 위해 귀국했던 2011년 2월 마지막 마감을 끝으로 글이란 걸 써본 일이 없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고된 육아로 인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 혹은 피로해진 정신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3년 전인가, 아니다.
출산을 위해 귀국했던 2011년 2월 마지막 마감을 끝으로 글이란 걸 써본 일이 없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고된 육아로 인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사실은 스트레스가 문제였다. 스트레스때문에 무기력해져있었다.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깊은 늪같은 무기력증이 나의 병명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날 아는 곳 없는 이 블로그를 선택한건 잘한 일인것 같다.
그래야 좀더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날 아는 곳 없는 이 블로그를 선택한건 잘한 일인것 같다.
그래야 좀더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과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변화라면 그건 바로 이다의 존재이다.
이다는 나의 딸의 태명이다..
2011년 4월 나에게로 와준 신비한 존재
내가 창조해낸 -엄밀히 말해 고와 나의, 난 자웅동체가 아니므로- 생명체
나를 종일 희노애락의 감정에 빠지게 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게 좋겠다.)
나를 종일 희노애락의 감정에 빠지게 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게 좋겠다.)
2011년 8월에 이다가 나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간절히 원했을 때 와주었고 임신 기간동안 내게 차원이 다른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어서 감사했다.
간절히 원했을 때 와주었고 임신 기간동안 내게 차원이 다른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어서 감사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다에게 잘 잤니? 좋은 꿈 꾸었니? 라고 인사를 했고 틈틈이 뱃속의 아기에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럽고 착한 어조로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6개월 때인가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을 때에는 감동도 그런 감동이 없었다.
뭔가 뽁 하고 터트리는 느낌이기도 하고 나비의 날개짓처럼 간지러운 귀여운 느낌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이다의 태동은 어떤 리액션 같아 정말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초기에 입덧이 너무 심하여 피를 토할때까지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근 한달을 인스턴트 냉면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는 초음파를 볼 때마다 아기가 크다고 하여 엄마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이 아기는 쑥쑥 잘 크고 있구나 안심하기도 했다.
그때 느낀 것은 역시 엄마는 강하구나 였다.
아무리 괴로운 컨디션에 있어도 아기를 걱정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엄마의 마음이구나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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